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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 기법

전통 가옥의 ‘마당’ 개념, 도시 주거 공간에 응용하는 법

1. 전통 주거문화에서 마당의 공간철학 – 경계 없는 삶의 무대

한국의 전통 가옥 구조에서 ‘마당’은 단순한 공터가 아니라 주거 공간의 핵심 축이었다. 마당은 실내의 연장선이자 실외와의 중간지대로 기능하면서, 주거 공간 전체의 흐름과 정서를 결정짓는 장소였다. 아침이면 장독대에 김치를 꺼내는 어머니의 손길이 있었고,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되며, 저녁이면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일과를 나누는 삶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처럼 마당은 시간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열린 공간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구조적 상징이었다.

또한 전통 마당은 단순히 인간 중심이 아닌, 자연과의 관계를 전제로 설계된 생태적 공간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나무를 심고, 햇빛이 들어오게 방향을 조율했으며, 비가 오면 땅에 스며들도록 흙바닥을 그대로 두었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서, 자연과 삶이 함께 호흡하는 건축적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현대의 패시브 디자인이 에너지 효율성을 추구하며 자연을 건축 요소로 끌어들이듯, 전통 마당은 오래전부터 기후에 맞서는 지혜를 품고 있었다. 이처럼 마당은 공간을 넘어서 철학이며, 삶의 태도를 담은 장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마당의 이런 개념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도시화된 삶 속에서 잃어버린 여백과 여유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마당은 실용적 공간인 동시에 정서적 안정과 공동체적 유대감까지 제공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현대 건축이 주목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전통 가옥의 ‘마당’ 개념, 도시 주거 공간에 응용하는 법

2. 도시형 주택에서 마당 개념의 공간 전략적 활용

도시 주거 환경에서는 넓은 마당을 확보하기 어렵지만, 마당의 본질적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 건축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도시형 주택에서 마당은 ‘공간 구조의 유연성’**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정을 두거나 테라스를 오픈 공간으로 설계하는 방식은 외부와 내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물리적 여유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햇살과 바람을 끌어들여 **자연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적 환기구조’**로 작용한다. 특히 도시 내 고밀도 주거 환경에서는 창문을 통한 통풍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정이나 소형 마당은 실내 환경의 쾌적함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또한, 조경 요소를 결합한 마당 디자인은 심리적 안정감과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3. 마당의 공동체적 기능 – 이웃과 연결되는 공간

마당은 개인 공간임과 동시에 사회적 연결 지점이기도 했다. 전통 사회에서는 마당을 통해 이웃이 서로 왕래하며 정을 나눴고, 혼례나 제사, 잔치와 같은 공동체 의례가 열리던 공공적 사적 공간이었다. 이처럼 마당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자, 소통의 플랫폼이 되어 마을의 문화와 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전통의 가치는 오늘날의 공동주택이나 도시형 타운하우스에도 응용될 수 있다. 단지 내 소규모 커뮤니티 마당, 공유 정원, 입주민 라운지 공간 등은 이웃 간의 자발적 소통을 촉진하는 마당의 현대적 구현이다. 이러한 공간은 도시의 단절된 삶에 따뜻한 공동체성을 회복시켜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

 

 

4. 마당 개념의 현대 건축 적용 사례 – 통합된 라이프스타일의 실현

최근 국내외에서 마당 개념을 현대적 공간 설계의 핵심 요소로 반영한 주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연희동의 한 협소주택 사례는 대지 면적이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좁은 중정을 배치해 실내외의 연속감을 살렸다. 이 중정은 빛과 공기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거주자에게 자연의 시간 흐름을 체감하는 감성적 여백을 제공한다.

또 다른 예로는 제주도의 일부 전통주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옛 돌담과 마당 구조를 유지한 채 내부를 현대적으로 리디자인한 사례가 있다. 이 주택은 외부는 전통의 형태를 유지하되, 내부는 개방형 구조로 설계해 마당과 거실, 주방이 하나의 동선으로 흐르는 통합형 공간을 완성했다. 이는 전통 마당이 가진 ‘열린 공간’이라는 개념을 현대 주거문화에 맞춰 성공적으로 재현한 사례다.

또한 해외에서도 일본, 스페인 등에서는 도심형 주택에 작은 안마당이나 중정을 도입하여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자연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마당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설계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5. 요약 – 마당, 현대 도시 주거 공간의 대안이 되다

전통 가옥의 마당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복합적 기능의 핵심 공간이었다. 현대 도시 주거에서도 이러한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며 중요한 공간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정, 옥상정원, 협소형 마당 등은 자연 요소를 수용하면서도 기능성과 심리적 안정감을 모두 제공한다. 더불어 이웃과의 소통, 가족 간 유대감 형성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마당의 현대적 활용은 과거의 공간 철학을 재조명하고, 미래의 지속 가능하고 감성적인 도시 주거 모델을 구현하는 데 있어 유효한 설계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를 현재에 맞춰 새롭게 창조해가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