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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 기법

고대 인도의 바우리(계단우물), 지속 가능한 물 저장 방식

1. 바우리(Baoli)의 기원과 문화적 배경

 바우리(Baoli), 또는 스텝웰(Stepwell)인도의 기후적 특성과 사회 구조에 적응한 독창적인 물 저장 시스템이다.

인도는 몬순 기후로 인해 일 년 중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지만, 나머지 기간은 건조하거나 심각한 가뭄이 지속된다. 이러한 기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세기 전부터 인도 전역, 특히 라자스탄, 구자라트, 마디야프라데시 같은 반건조 혹은 사막 지역에서 바우리가 발전하였다.

 

고대 인도의 바우리(계단우물), 지속 가능한 물 저장 방식

 

 

 단순한 수직 우물이 아니라, 사용자가 수위에 따라 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설계된 구조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해법이었다.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바우리는 기원전 수 세기부터 존재했으며, 특히 중세 구자라트 술탄 왕조와 무굴 제국 시기에는 미적 요소와 종교적 의미가 결합된 정교한 건축물로 발달했다. 많은 바우리가 신전, 궁정, 시장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신성한 의식과 공동체 중심의 활동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물은 단지 생존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정화와 연결의 상징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바우리는 단순한 기능적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2. 건축적 구조와 환경적 설계 원리

 바우리는 물을 저장하는 공간인 동시에, 지역 환경과 건축 지식을 집약한 고도의 친환경 구조물이다.

일반적인 바우리는 지면 아래로 수 층 깊이 파내려가며 수직으로 물이 저장되는 공간을 형성하고, 양쪽에 대칭적인 계단을 둬서 사용자들이 수위에 따라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구조는 7층 이상 내려가기도 하며, 벽면에는 조각과 기둥, 발코니가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어 예술적 가치도 높다.

 

 바우리의 깊이와 벽면 재료는 일조량과 주변 지형에 따라 달라지며, 대부분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석회암, 사암 또는 벽돌로 지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지하의 시원한 온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면서 수온의 급변을 막고, 물의 증발을 크게 줄였다.

또한 바우리는 강우 시 빗물을 모아 지하로 스며들게 하여 수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지하수 재충전 시스템 역할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기후와 지형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건축에 반영했으며, 이는 현대의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지속 가능한 건축이나 생태도시 설계에서 바우리의 구조적 원리가 다시 활용되고 있다.

 

 

3. 바우리의 사회적 기능과 공동체 중심성

 바우리는 물 저장 기능을 넘어서, 사회적·문화적 상호작용의 중심지였다.

인도 전통 사회에서 물은 정화와 신성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바우리는 종교적 수행, 명상, 사회적 교류, 심지어 휴식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바우리 근처에는 종종 신전이나 작은 사원이 함께 건축되었으며, 순례자들은 목욕을 통해 정결함을 얻은 뒤 신전 참배를 하는 전통을 따랐다.

 

동시에 바우리는 여성들의 삶에서 중요한 장소였다.

여성들은 매일 물을 기르기 위해 바우리를 오르내리며,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소식을 나누고 일상적인 유대를 형성했다. 바우리 계단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무대였으며, 각 계단마다 쉴 수 있는 플랫폼이 설치되어 있어 휴식과 만남의 장소로도 기능했다.

 

 특히 여름철에는 바우리의 지하 공간이 자연 냉방 효과를 제공해, 사람들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바우리에 조각된 신상이나 문양은 종교적 의미 외에도 당시의 문화적 수준과 미적 감각을 반영한다.

결국 바우리는 사람과 자연, 사회와 종교를 잇는 복합 공간이자 살아있는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4. 현대 도시 설계에서의 바우리 재조명

 오늘날 기후 위기와 도시화의 문제 속에서, 바우리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특히 물 부족과 도시 열섬 현상,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대 바우리의 원리를 현대 도시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인도 정부와 비영리단체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바우리들을 복원하고 있으며, 이를 교육 자원과 관광 자산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물 저장 기반으로 재생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구자라트의 아다랄리 스텝웰(Adalaj Vav)이나 델리의 아그라센 바우리(Agrasen ki Baoli)복원 후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내 물 순환 시스템으로서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인도의 몇몇 에코 리조트에서는 바우리 구조에 영감을 받아 계단식 수영장, 자연 냉방 지하 라운지, 전통 건축 테마를 적용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은 물론, 여행객에게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과 도시 디자이너들은 바우리의 계단형 구조, 빗물 유입 방식, 자연 냉각 기능을 현대 건물 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친환경 학교, 병원, 커뮤니티 센터에서 바우리 원리를 반영한 저수 시스템과 열 조절 구조를 적용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급적인 물 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고대 기술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현대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지속 가능한 건축 모델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5. 과거의 지혜가 만든 미래의 해답

 바우리는 단지 물을 저장하는 우물이 아니라,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온 방식을 상징하는 전통 건축물이다.

기후와 지형,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 이 구조물은 정교한 건축적 기술과 공동체 중심의 문화가 결합된 결과였다.

 

 오늘날 바우리는 현대 도시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과거의 지혜가 어떻게 미래를 위한 해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화 유산의 가치는 단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원리와 철학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바우리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