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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 기법

몽골 게르의 이동형 주거, 유목 생활의 건축적 해답

유목 민족의 삶과 건축의 탄생: 게르(Ger)의 기원

 몽골의 광활한 초원은 계절마다 극심하게 변하는 기후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고정된 주거보다는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생활 방식이 더욱 적합했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유목 문화는, 주거 형태 또한 철저히 환경에 순응하며 진화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게르(Ger)'다. 게르는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들이 사용한 전통 이동식 주거 형태로, 그 뿌리는 기원전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게르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유목 생활에 맞춰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가축의 이동 경로에 따라 주거를 옮겨야 하는 유목민에게는 빠르게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구조가 필수였다. 동시에 바람과 추위, 뜨거운 햇볕 등 극한 기후 조건을 견뎌내야 했다. 게르는 이러한 다양한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최소한의 자재로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는 건축물로 발전했다.

몽골에서는 오늘날에도 약 30% 이상의 인구가 게르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여전히 실용적인 건축 양식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르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건축적 지혜가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로, 전통 건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화해온 방식을 상징한다.

 

몽골 게르의 이동형 주거, 유목 생활의 건축적 해답

게르의 구조적 특징과 조립 방식

 게르의 구조는 간결하면서도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기초 구조는 목재로 만들어진 격자형 벽체(하나, khana), 방사형 지붕 지지대(우니, uni), 그리고 중앙을 지탱하는 기둥(토노, tono)으로 구성된다. 이들 부품은 모두 접을 수 있게 제작되어 있어 이동 시에는 쉽게 분해하고, 새로운 장소에서는 빠르게 조립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유목민이 계절이나 가축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생활에 매우 적합하다.

특히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토노단순한 지붕 개방구가 아닌, 내부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환기 장치 역할을 한다. 화로에서 나오는 연기는 토노를 통해 위로 빠져나가고, 외부 공기는 자연스럽게 유입되어 공기 순환이 가능하게 된다.

방사형으로 펼쳐진 지붕 지지대전체적인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눈이나 바람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킨다. 외부를 덮는 펠트와 방수포는 겹겹이 감싸는 방식으로 보온성과 방풍 기능을 극대화한다.

 

 또한, 게르의 조립은 혼자서도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전통적으로는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가 함께 설치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문화적 행위로 간주된다. 이는 건축이 단지 기능적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협업과 유대를 반영하는 사회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게르의 구조는 유목민의 실용성과 환경 적응 능력이 건축적으로 구현된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몽골 게르의 이동형 주거, 유목 생활의 건축적 해답

재료의 친환경성과 지역성

 게르는 철저히 자연 환경에 순응하며 지역 자원을 활용해 만들어진, 생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건축이다.

구조를 이루는 주요 재료는 대부분 몽골 초원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와 가축의 털이다.

특히 벽체와 지붕을 구성하는 목재는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자작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며, 외피를 감싸는 펠트는 양털을 압축하여 만든다. 이 펠트는 보온성과 통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몽골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데 효과적이다.

 

 게르 한 채를 짓는 데에는 거의 모든 자재가 재사용 가능하거나 자연 분해가 가능한 소재로 구성되어 있어 탄소 발자국이 극히 낮다. 이는 현대적으로 보았을 때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와도 일맥상통하는 친환경 건축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펠트는 비와 눈을 차단하는 방수층 역할은 물론, 여름에는 내부 온도를 낮추는 데도 큰 역할을 하여 연중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게르 건축에서 눈여겨볼 점은 이러한 친환경 재료들이 단지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라, 유목민의 생존과 생태순환에 기반한 생활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펠트를 만드는 과정조차 공동체의 중요한 행사였으며, 자원의 소중함과 순환적 사고를 반영하는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게르의 재료 선택은 단지 기술적인 요소를 넘어, 자연과 공존하고자 했던 유목민의 철학을 담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공간 구성과 문화적 상징성

 게르는 외관은 단순해 보일 수 있으나 내부 공간은 명확한 구조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입구는 대부분 남쪽을 향하며, 북쪽 중앙은 가장 존귀한 자리를 의미해 손님이나 가장이 앉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중앙에 놓인 난로는 단순한 난방 수단이 아니라 가족의 중심과 생명을 상징한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단지 실용적인 배치를 넘어서, 몽골 유목민의 가치관과 사회적 질서를 반영한다. 게르 내부는 또한 가축의 생산물, 종교적 상징물, 일상 용품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전통 문화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건축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게르의 공간 구조는 유목 생활의 리듬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으며, 생활 방식과 문화가 건축 공간을 통해 구현된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 건축에서의 활용과 재조명

 최근 들어 기후 위기와 주거 불균형 문제 속에서 몽골 게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동성과 자원 효율성, 친환경성은 지속 가능한 건축을 고민하는 현대 사회에 귀중한 힌트를 제공한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는 게르를 모티프로 한 에코 하우스나 글램핑 숙소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캠핑 또는 대체 주거 형태로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 건축가는 게르의 구조적 간결함과 생태적 효용성을 활용하여 소형 주거, 재난 대피용 임시 거주지, 지속 가능한 관광 시설 등 다양한 형태로 응용하고 있다. 이는 전통 건축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미래 지향적 건축 디자인의 원형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